【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지난 10일(현지시간) 필리핀을 관통하면서 인구 20만명이 넘는 필리핀 중남부 레이테섬 동부 해안도시 타클로반은 하이옌이 동반한 시속 314㎞의 강풍과 건물 2층 높이의 폭풍해일에 쑥대밭이 됐다.
폭풍해일에 목재 주택들은 무너지고 해변에 선박들이 떠밀려 왔다. 타클로반 공항의 터미널 건물들도 태풍이 아닌 수십m 떨어진 곳부터 밀려온 폭풍해일에 무너졌다.
수많은 사람이 숨지고 실종되는 등 대규모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다음날 현지 주민들이 강풍과 집중호우에는 대비했으나 폭풍해일에는 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지 주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국이 쓰나미 경보를 했었다면 현지 해안 지역에 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쓰나미 경보는 없었다. 당국이 폭풍해일에 대해 경고했지만 현지 주민은 폭풍해일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살인적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세계 아동 구호 비정부기구 ‘세이브 더 칠드런’의 구조대원 네드 올니는 CNN에 “제30호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에 상륙하기 전 이 단체 소속 구조대가 태풍에 대비했었다”며 "타클로반 주변 지역이 ‘킬 존(kill zone)’이라는 보고를 받아 태풍 대비 경험이 많은 구조대도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하이옌 상륙 당시 구조대는 시멘트로 튼튼하게 지은 2층 건물에 대피했었다”며 “그래도 창문이 깨지고 지붕이 날아갔으며 컴퓨터와 구조장비 모두 망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대도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며 “상황이 너무 심해 살아남은 것 자체가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현지 당국이 폭풍해일을 경고했다고 해도 이 대재난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이옌이 상륙하기 전인 지난 8일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필리핀 대통령이 국가에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그러나 폭풍연구단체 ‘어스 언컷 프로덕션스(Earth Uncut Productions)’의 창립자이자 전문 폭풍 추적자 제임스 레이놀즈는 CNN에 하이옌이 타클로반을 강타하기 전 자신도 대피할 수밖에 없었다며 현지 주민들은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필리핀인들은 폭풍해일 대비에 익숙하지 않았다”며 “폭풍해일은 일반적 상황이 아니라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태풍 하면 높은 폭풍해일을 연상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국의 태풍 경보에 하이옌이 이 정도로 강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태풍에 주민이 대피할 수 있는 곳을 알기 쉽지 않다. 대규모 주민 대피에서 어쨌든 주민 수송이 큰 골칫거리지만,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은 다른 섬으로 이뤄진 국가들보다 상대적으로 기반시설이 부족해 대규모 주민 대피 문제가 더 어려웠다.
현지 노인들은 CNN에 대피하다 위험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움직이지 않고 태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밝혔다. 현지 주민 누구도 이 같은 대형 폭풍해일이 밀려올지 예상하지 못했었다.
유엔재난평가조정팀의 세바스티안 로즈 스탬파 팀장은 CNN에 하이옌 피해 규모가 커진 데에 특히 이 점을 지적했다. 그는 또한 CNN에 필리핀에 있던 자신의 동료가 태풍 하이옌의 피해 정도가 지난해 필리핀 남부를 강타해 100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태풍 ‘보파’와 비슷하다고 말했지만, 보파보다 100배 더 심하다고 밝혔다.
그는 “보파는 위력이 강하고 넓게 퍼져 있었지만, 이에 비해 피해 지역은 넓지 않았다”며 “이를 보면 이번 초강력 태풍 하이옌으로 필리핀 국민이 어떤 재앙을 겪을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될 태풍 하이옌 재앙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필리핀 정부는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보고 있다. 지난 11일 폴란드에서 개막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필리핀 대표가 태풍 피해 참상과 온난화 대책 필요성을 눈물로 호소하며 단식을 선언했다.
필리핀 대표 예브 사노 기후변화담당관은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에 “우리는 무기력하게 앉아서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다”며 “이제 행동을 취할 때이며 온난화 대책이 긴급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영국에 있는 국제 환경개발 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살리문 후크는 CNN에 “20년 또는 50년마다 발생했던 기상이변이 이제 2년마다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하이옌 같은 기상이변이 일반적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기상 상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부자 나라나 가난한 나라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라며 “모든 나라가 이 기상이변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리핀은 다른 나라에 비해 태풍에 잘 대비하고 있지만, 최선의 예방책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이 상황에서 태풍으로 대피소마저 파손되면 사람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기후전문가들은 이번 하이옌 재해를 통해 배운 교훈으로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1999년 강력한 사이클론이 강타해 1만명이 숨진 인도 동부에 지난달 또 초강력 사이클론이 상륙했다. 그러나 인명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주민 100만명이 미리 대피해 21명만 실종됐다.
기상이변은 더 심해질 수 있지만, 인간에겐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 있다. 현재 폭풍 예측과 경고 체계를 위한 기술이 더 발전했다.
기후전문가들은 방글라데시도 지구온난화에 취약하지만, 미래 위험에 가장 잘 적응하는 나라로 평가하고 있다.
후크는 방글라데시와 인도 당국들은 지난 2004년 20만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쓰나미 재해를 통해 폭풍 경고를 정확히 내려야 하는 교훈을 얻었다고 밝혔다.
suejeeq@news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