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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 뒤 폭염이 8월 중순으로 접어들며 풀리더니 큰비가 내렸다. 우산을 쓰고 잠시 걸었는데 무릎 아래 바지가 펑 젖을 정도였다. 군산은 하루에 400밀리의 비가 내려 산사태가 발생하고 건물의 지하가 침수되었다는데, 하수관로에 여유가 있는지 인천의 아파트 단지는 서울 강남처럼 도로에 물이 넘치지 않았다. 신축한 굴지의 대기업 건물이 하수관로의 흐름을 방해해 땅값 비싼 강남 복판도 큰비가 내리면 탈이 난다는데, 대기업 빌딩이 없어서 그런가, 인천의 도로는 침수되지 않았다. 비가 그치자 낮 시간대는 다시 무더워졌다.
억수 같던 빗물은 금방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이상기후가 일상화되었으니 장마철 뒤 큰비와 폭염이 이상할 게 없다. 한데 우리는 도시나 농촌이나 이상기후를 대비하지 못한다. 빗물을 완충하지 못하는 도시는 금방 흥건해지지만 비가 그치면 말끔한데, 억수 같던 빗물은 금방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인천은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쳐 바다로 내보내고, 내륙의 도시는 하수종말처리장을 거쳐 강으로 가거나 낮은 곳으로 흐르다 하수처리 없이 강으로 직행할 텐데, 도시에 호수나 논밭, 또는 숲이 많다면 그만큼 빗물은 완충될 것이다. 지붕에서 빗물을 모아 재활용하는 장치가 있어도 완충될 텐데, 강수량이 영원히 충분하다고 믿는 것인지 녹지와 논밭을 집중 개발한 우리 도시에 빗물을 재활용하는 건물은 거의 없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큰 산지인 우리나라에 빗물의 60퍼센트 정도가 장마철에 집중되지만 깨끗하게 흐르는 강물이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건, 강바닥과 가장자리에 두툼하게 깔린 모래가 강물과 함께 흐르며 물기를 정화하며 머금기 때문이다. 틈이 많은 바위와 고생대부터 쌓인 산록의 스펀지 같은 부식토가 습기를 머금으며 조금씩 배출하기 때문이다. 강이나 시내 주변에 많은 논과 저수지들이 물기를 붙잡으며 지하수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연 특징에 맞춰 농사짓고 살아왔기에 어쩌다 큰비가 내려도, 가뭄이 혹독해도, 버틸 수 있었는데, 이젠 과거의 일이 되었다.
기계화에 이은 관개농업은 논에 기대 살아가던 자연의 생명체를 무시하고 벼의 생장에 한정해 물을 적시정량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논 주변의 생태계는 단순해졌을 뿐 아니라 빗물 완충 능력도 줄었다. 다목적댐이나 커다란 저수지에 의존할 뿐, 논 가장자리의 오랜 물웅덩이가 사라진 까닭이다. 한데 쌀 소비가 대폭 줄어들고 곡물을 포함한 농작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면서 논 자체가 급속히 위축되었다. 논밭이 공장이나 주택, 그 사이를 이어주는 아스팔트 도로로 바뀌면서 사막이 되었다. 도시 주변에 농경지가 사라지자 뙤약볕이 며칠 계속돼도 소나기가 내리지 않는다.
산에 나무를 많이 심어 임산 자원은 다소 늘었지만 무책임한 골프장 개발은 산의 보습력을 상당히 줄였다. 골프장과 도시를 잇는 아스팔트 도로 그리고 국토를 바둑판처럼 나누는 고속도로와 국도들은 산의 흡수력을 방해할 뿐 아니라 동물들의 이동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4대강에 대형 보로 16군데 가로막은 현 정권의 사업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하다. 사람이 세상에 출현하기 훨씬 전부터 산하를 굽이치며 도도하게 흐르던 강이 덜컥 막히고 말았다. 좌우의 생태계를 폭넓게 연결하고 지하수와 부드럽게 이어지며 바다에서 하류를 거쳐 상류까지 이을 뿐 아니라 세월과 전설과 역사를 흘려주던 강의 생명이 턱 막히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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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홈페이지 칼무리 |
폭염 때문이라고? 녹조는 겨울철에도 발생한다
물그릇은 커졌지만 생태계는 크게 위축되었다. 모래와 자갈, 호박돌과 바위들, 여울과 소가 사라졌다. 그 사이를 바삐 흘러가던 물살은 막혔고 따라 흐르던 모래도 막혔다. 바닥과 가장자리의 모래들은 6미터 깊이로 판 굴삭기에 실려 강둑 위로 막대하게 올라가면서 터전을 잃은 생물은 강을 떠났으며 좌우의 생태계는 강에서 잘렸다. 대형 보가 만든 호수는 바다에서 상류로 이어지던 연결을 끊었고 강은 세월도, 전설도, 역사도 잃었다. 지하수와 연결되는 강물이 오르내리면서 주변 경작지는 물에 젖어 썩거나 바싹 말라버렸다. 고인 강물에 녹조가 덕지덕지 끼며 썩어가면서 물은 많아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악취를 유발하는 남조류 뿐 아니라 치명적인 독소를 내는 종류도 나타나고 있어 시민단체는 위험성을 거듭 알리는데, 강에 녹색 페인트를 부은 듯 두툼하게 녹조가 덮친 곳이 하필 취수장이지만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끓여먹으면 된다고 주장했다. 악취와 독소를 지적하자 활성탄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정부는 대응했다. 그러면서 가뭄과 폭염이 녹조의 원인이므로 날씨가 풀리거나 비가 내리면 녹조는 물러갈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번 녹조와 4대강 사업은 무관하다 강조했지만 녹조는 폭염 전은 물론 겨울철에도 발생했다는 점, 녹조가 유난스러운 낙동강은 주민들 기억에 이제까지 녹조가 없었다는 점을 정부는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수온이 높으면 급격히 늘어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녹조는 적당한 산소와 인산염과 질산염이 공급되는 호소(湖沼, lake)에 발생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정부에서 뭐라고 둘러대든, 물리학의 열역학법칙처럼 바뀔 수 없는 현상이다. 분포하는 생물종이 다양하고 분포하는 생물의 개체가 풍부한 생태계, 다시 말해 우포늪과 같은 호소에 녹조류는 번성할 수 없지만 굴삭기로 획일적으로 생태계를 파괴한 곳이 4대강이다.
폭염 속에서 강물이 정체된다면 녹조의 온상일 수밖에 없다. 모래가 흐른다면 모래 틈에 서식하는 미생물이 질산염과 인산염을 제거하겠지만 4대강 사업은 모래와 미생물의 역할마저 차단했다. 정부는 상수도 처리를 강화하면 된다고 호언했지만 강물은 사람의 식수에서 그치지 않는다. 한데 그냥 떠 마실 수 있었던 물을 왜 굳이 오염시킨 뒤 큰돈을 들여 정화해야 하나. 그것도 불안정하게.
오르내리는 전선을 따라 폭넓게 내리는 장맛비와 달리 삼복 이후의 비는 기상대의 첨단 슈퍼컴퓨터도 예견하지 못하는 국지성이다. 삼복더위 이후에 낙동강 일원에 큰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큰비가 내린 북한강과 금강의 녹조는 과연 희석되었는데, 그러므로 사라질 것인가. 전문가들은 영양염류가 공급되면서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녹조류가 번성할 정도의 더위는 계속될 것인데 강물은 여전히 정체되기 때문이다. 빗물로 다소 밀어내 녹조가 희석되어도 단세포식물인 녹조가 다시 늘어나는 건 시간문제일 따름이 아닌가. 시간당 한 차례 분열해도 10시간이 지나면 1000배 증가할 수 있다. 문제는 산소 고갈로 번성했던 녹조류가 한꺼번에 죽을 때 벌어질 수 있다. 독성 물질을 내놓으면서 생태계가 괴멸될 수 있다.
이상기후가 일상화가 된 요즘, 우리의 4대강 사업은 엎친 데를 더 덮쳤다. 4대강 사업과 녹조가 무관하다는 정부의 주장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인다. 4대강 사업의 원천적 책임 소재를 가진 현 정권 수장의 눈치를 보았을 테지만, 머지않아 번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권 교체 뒤 거대한 실패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와 재발방지를 위한 절차는 반드시 진행되어야할 테지만, 끔찍한 녹조로 망가진 낙동강과 한강과 금강과 영산강의 수질과 생태계는 서둘러 회복시켜야 한다. 22조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갔더라도, 더욱 막대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4대강의 막힌 물길을 반드시 터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철근콘크리트 대형 보를 헐어내야 할 것이다. 생명은 녹조로 덕지덕지 오염된 호수에 의탁하지 않는다.
박병상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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