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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31 13:45
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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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의 정치·경제학
 
광주일보  2012.  7.  31                                                             박 재 순

 

불볕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여름이라 더운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정도가 점차 강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기후변화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불과 한 달 사이에 가뭄에 이어 장마, 태풍, 그리고 또다시 폭염이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이제 가뭄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두어 차례 장맛비가 내리면서 두 달 넘게 지속되던 가뭄은 완전 해갈됐다. 언론과 국민의 관심은 가뭄에 이어 장마, 이번에 무더위로 옮겨갔다. 이처럼 올 가뭄도 스쳐 지나간 일에 불과한 것으로 이미 기억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가뭄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북한은 물론 러시아와 브라질 북동부지역과 중국, 서아프리카지역에도 가뭄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56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맞고 있는 세계 최대 식량수출국의 하나인 미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미 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미국 대륙의 55%가 가뭄을 겪고 있는데 이는 국토의 56%가 가뭄상태에 놓였던 1956년 이후 가장 피해가 크다고 한다. 이외에도 미국 대륙의 80% 이상이 건조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작물과 경작지, 방목장 등이 18년 만에 최악의 가뭄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미 농무부의 설명이다.

우리가 왜 다른 나라의 가뭄까지 걱정해야 될까? 다른 나라의 문제가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취약한 식량 자급률에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은 27%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거의 모든 식량을 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세계의 주요 곡물시장이 단일 유통구조 하에 움직이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가뭄이 다른 나라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곡창지대인 미국은 전 세계 옥수수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데다 중국 콩 수입물량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어 작황 부진이 세계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가뭄 여파로 당장 세계 곡물시장에서의 가격폭등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 농무부(USDA)와 전문가들은 올해 옥수수 생산량이 지난해보다 25∼30% 감소하고, 콩 생산량도 1988년 가뭄 이후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따라서 생산량 감소에 따른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한국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이달 중순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 기준으로 국제 곡물 선물가격은 t당 밀, 옥수수, 대두 등 주요 곡물의 선물가격이 ‘애그리플레이션’(agriflation·농산물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2008년 평균 국제곡물 가격을 이미 훌쩍 뛰어넘었다. 특히 대두와 옥수수는 역대 최고치에 근접했거나 넘어섰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앞으로도 가뭄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곡물 투기에 따른 가격 상승은 생산량 감소폭보다 훨씬 더 커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곡물시장 가격은 국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사료를 외국에 전량 의존하고 있는 축산농가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사료값이 올라 생산비가 급등하고 이는 고기값 상승, 관련 상품의 소비자물가 인상, 소비와 경기위축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가뭄과 홍수 등 기후변화에 따른 국제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농산물발 인플레이션을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식량 수출국의 식량무기화이다. 2010년 러시아가 가뭄으로 수출제한조치를 취했던 것처럼 생산량이 감소하면 곡물수출국에서는 수출제한조치를 내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식량을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국가들로서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수입할 능력조차 없는 빈곤 국가에서는 식량부족으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게 된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식량부족으로 고통받는 기아인구가 10억 명에 이르고 이중 매년 1000만 명 가량이 굶주림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역사는 경험의 축적이다.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 역사이다. 역사를 통해 배운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배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가뭄과 홍수 등으로 인한 식량생산량 감소에 따른 정치·경제위기를 겪은 사례를 역사 속에서 너무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이후, 가뭄과 홍수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역사적 경험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단지 식량생산량 감소만이 아니라 정치 불안과 경제 위기로까지 확대된다는 것이다. 우방국과의 군사동맹은 가능하나 식량동맹은 불가능하다.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에그리플레이션’ 시대를 맞아 우리는 역사의 경험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 사장〉